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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국내여행

[대구] 충절의 표상 신숭겸장군 유적지

by e마루 2013. 4. 7.

최수종이 나왔던 '태조왕건'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최고 시청률 60.5%로 국민드라마로 불리기에 어려움이 없었으니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김영철이 연기했던 궁예의 모습은 한때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드라마 태조왕건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신라를 치고 돌아가던 후백제 견훤을 맞아 싸우다가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을때, 한 장수가 왕건을 피신시키기 위해 왕건의 옷을 바꿔입고 후백제군을 유인하여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이 있다.

 

"형님 폐하를 위해 목숨을 다하게 돼 더 이상의 영광과 기쁨이 없사옵니다. 부디 강건하시고 대업을 이루시옵소서"란 명대사를 남기며 떠나는...

배우 김형일씨가 연기했던 이 멋진 장수가 바로 신숭겸 장군이다.

 

신숭겸장군은 고려태사 개국공신으로, 신라 말기에 전라도 곡성현에서 태어났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천성이 용맹스러웠으며 활 쏘는 재주와 무예가 뛰어나 장수다운 자질이 보였다고 한다.

 

신숭겸 장군은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논의하여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받을어 고려를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앞서 이야기 한 드라마속의 일화로 신숭겸 장군은 후세에 충의와 절개의 표상이 되었다.

 

 

따라서, 신숭겸장군유적지는 대구의 제 1호 기념물일 정도로 그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신숭겸장군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는 표충재로 가는 길이, 우측에는 표충단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표충재로 가는 입구에는 신숭겸장군이 말 위에서 하늘을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의 동상이 있는데, 이것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평주 삼란으로 사냥을 나갔을 때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쏘겠는가"라고 하자 장철공 신숭겸장군이 선뜻 나서 태조가 명한 셋째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혀 떨어뜨렸다고 한다.

 

 

▲ 표충단과 순절지지비

 

표충단을 신숭겸장군의 묘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표충단은 신숭겸 장군이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을 피신케 하고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곳에 단을 쌓은 곳이다. 신숭겸장군의 시신은 강원도 춘천에 매장되어 있다.

 

표충단의 옆에는 고려장절신공 순절지지비가 있는데, 이 비는 1819년 신숭겸의 28대손 의직이 세웠다고 한다.

비문에 의하면 신숭겸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 전라도 곡성에서 출생하여 광해주(지금의 춘천)로 이거, 홍유, 복지겸 등과 궁정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

 

 

 

표충재로 들어가기 전 우측에는 과거 고려를 개국하는 시기부터 신숭겸장군이 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들이 삼화와 함께 설명되어 있다.

 

▲ 표충재

 

조선 선조 40년(1607)에 경상도관창사 유영순이 지묘사의 자리에 표충사를 지어 신숭겸장군을 모셨으나, 고종 8년(1871)에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지자 후손들이 표충재를 새로 지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 경의문

 

표충사 입구로 잠겨 있어서 표충사를 보지 못하였으나,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지었던 표충사는 고종 8년(1871)에 철폐되었고, 1988년 후손들이 뜻을 모아 새로이 사당을 중건하고 1993년에 장군의 영정과 신위를 모셨다.

 

▲ 상절당

신숭겸 장군의 높은 절개를 추모하여 건립된 상절당

 

 

 

 

그저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속의 이야기를 현실속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참 다르다.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는 흔히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신하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 충성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신숭겸장군유적지는 충절이 어떤 것 인지 후세에 알리는 좋은 교육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