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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국내여행

[강원도] 8월 여름의 오대산- 2편

by e마루 2009. 8. 24.

인적이 뜸한 산은 너무 고요해서 두렵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날씨가 점점 따뜻해 진다는 거다.


비로봉에서 상왕봉까지는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라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왠지 무섭다.
옛날 한참 산을 좋아 할때 매년 지리산 종주만 2~3차례씩 할때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음에도 부쩍 무서움을 타는 것을 보면 나이도 먹고 몸도 많이 약해 졌는가 보다.
그렇게 온갖 잡생각을 떨치며 걷기를 1시간만에 상왕봉에 도착했다.


상왕봉은 비로봉보다 조금 낮은 1,491m이다.
아직도 밥을 먹기는 조금 이른 시간이고 오늘 오대산을 완주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 없다는 생각에 사진 몇장 찍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상왕봉에서 내려가는 동안 정말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해가 나오지 않고 날이 축축하니 비가 올지도 모를 그런 살씨에 바람이 부니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다. 약간 무서웠다.
슬~ 점심시간도 가까워 왔고 채력도 보충해야 겠다는 생각에 잠시 쉴만한 바위 하나 찾아 배낭을 풀고 사온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분명 뒤에서 쫓아 오던 사람도 없었고, 마주친 사람도 없었는데 어디선가 부시럭~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분명 바람 소리도 아니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아니다. 문득 지나온 길에 서 있던 표지판이 떠올랐다. 땅이 마구 파해쳐진 곳마다 멧돼지의 흔적이라며 자랑스럽게 서있던 표지판들…ㅡㅜ.

김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좀 멀리서 들리던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길 옆의 약간 낭떨어지 같은 쪽에서 들린다.
머리의 기억속에서 동물의 왕국이나 다큐등 멧돼지 관련 기억을 끄집어 내 보지만, 산속에서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맞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조용히 조용히 지나가야 하나?
지그제그로 뛰면서 가야 하나?
나무위로 올라가야 하나?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 멧돼지가 달아나게 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폼생폼사라 손을 버들버들 떨면서도 달아나지 않고 싸온 김밥을 다 먹었다. 절대 쫄지 않았다는 의미로 물까지 마신다. 쓰레기와 물병을 베낭에 넣고 다 쉬었으니 간다는 의미로 기지개를 피고 걷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스틱 맨끝의 고무는 제거 했다. 아무래도 뾰족한 스틱이 좋을 것 같았다. 걸음을 빨리 하면서 내려가는데 “멧돼지 출몰 흔적”이란 표지판 들이 계속 눈에 들어 온다.ㅜㅜ
괜히 부시럭거리는 소리도 내고, 스틱으로 바위를 쳐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보기도 하면서 걸었다. 다행히 부시럭거리던 소리가 더이상 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렇게 걷는 사이 두로령 갈림길에 도착했다.

갈등이 시작됐다. 원래 계획은 두로봉을 거쳐 동대산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혹시라도 가는 도중에 배고픈 멧돼지를 만나게 되면~ 이란 생각이 머리를 짖누른다.
두로령 갈림길 표지판에 도착한 시간이 11시15분…
점심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12시도 아직 안됐는데…
몸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아 동대산까지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지나온 길이 유쾌하지만은 않아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ㅎㅎ) 상원사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내려 간다고 생각하니 겁도 안난다. 아마도 해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려 가는 길에 있는 나무들이 음산하지 않고 상쾌한 녹색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꽃들도 이뻐보인다. 사진으로나 봤을 법한 꽃도 보인다.

그동안 비가 많이 왔었는니 쓰러진 나무도 많고, 길도 많이 축축하다. 그래도 전처럼 무섭게 보이지는 않는다.


3~40분쯤 내려가다 보니 차가 다닐 만한 큰 길이 나온다. 아마도 지도에서 봤던 차도 같다. 실제 차가 다닐만한 곳은 아닌 것 같지만 적어도 무섭지는 않다..ㅎㅎ.


그러나 나무수풀이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아 꽤나 덥다. 그래도 맘은 편하다.
그렇게 오대산 산행은 오후 1시에 20분에 끝이 났다. 차를 새워놨던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자동차 안테나에 잠자리가 앉아 졸고 있다.
 


너무 일찍 내려와서 스케줄이 꼬였다. 지금 서울로 출발하면 차가 막힐텐데… 가장 싫어하는 것중 하나가 막히는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이고 여름에 바다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차를 해수욕장으로 돌렸다. 물론 수영복도 없고 바다에서 놀 생각은 없었다. 그저 구경하러 갔을 뿐…


해수욕장도 거의 끝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예상만큼 많지는 않았다. 혼자 해수욕장에서 할 것도 없고 해서 인증샷만 찍고 그렇게 여행을 마무리 했다.